저는규현입니다
@wjsrbgus04
지난달에 석사 학위논문 심사를 통과했습니다. 2년 동안 주제를 두 번 바꿨고 마지막 주제로 실제 실험을 한 기간은 8개월밖에 안 됩니다. 후배들에게 "이렇게 하지 마라"고 말해주고 싶은 게 몇 개 있어서 남깁니다. 자랑이 아니라 기록입니다.
선행연구를 제대로 안 읽고 시작했습니다. 정확히는 읽었는데 "읽었다"와 "이 분야가 어디까지 왔는지 안다"가 다르다는 걸 몰랐습니다. 반년쯤 지나서 거의 같은 셋업의 논문이 나와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제가 하려던 게 이미 3년 전에 더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습니다.
배운 것: 서베이 논문 한 편을 요약하는 게 개별 논문 20편을 훑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리고 그 분야 최신 학회 proceedings 목차를 한 번 쭉 넘겨보는 데 두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그 두 시간을 안 써서 반년을 썼습니다.
이번엔 주제 자체는 괜찮았는데 제가 접근할 수 없는 데이터가 필요했습니다. 협력기관에서 받기로 했던 데이터가 계약 문제로 막혔고 대체 데이터셋으로는 원래 세운 가설을 검증할 수 없었습니다.
배운 것: 주제를 잡을 때 "내가 이걸 실제로 할 수 있는가"를 먼저 따져야 합니다. 필요한 장비, 데이터, 계산 자원, 그리고 소요 시간. 지도교수님은 큰 그림을 주시지만 실행 가능성 확인은 결국 본인 몫입니다. 지금 같으면 주제 확정 전에 "최소한의 예비 실험"을 2주 안에 돌려보고 결정하겠습니다.
1. 3개월마다 "지금 멈추면 뭐가 남는가"를 적어본다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신호는 대체로 일찍 옵니다. 다만 그동안 쏟은 시간이 아까워서 못 놓습니다. 저도 첫 번째 주제를 두 달은 더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 두 달은 그냥 버린 시간입니다.
2. 실패한 것도 결과물로 만든다
엎어버린 두 주제에서 나온 코드와 예비 데이터를 전부 버렸습니다. 나중에 보니 첫 번째 주제의 분석 파이프라인은 최종 논문에서도 쓸 수 있는 거였습니다. 정리해두지 않아서 다시 짰습니다.
3. 지도교수님께 나쁜 소식을 빨리 말한다
이게 제일 어려웠습니다. 안 되고 있다는 걸 보고하기가 싫어서 미팅 때 애매하게 넘어간 적이 많습니다. 결국 나중에 더 크게 터집니다. 두 번째 주제를 엎을 때는 문제를 발견하고 일주일 안에 말씀드렸는데, 그때 대안을 같이 찾아주셔서 훨씬 빨리 정리됐습니다.
"두 번 엎은 건 실패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결과적으로 최종 주제는 앞의 두 번을 거치지 않았으면 못 잡았을 겁니다. 다만 그 과정이 꼭 20개월이어야 했느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사 진학하신 분들은 이런 시행착오가 어느 시점에 줄어들던가요? 아니면 스케일만 커지고 계속 반복되는 건지 궁금합니다.